목이 매달린 자가 있다
칠흙같은 어둠을 지극히 미약한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한발 한발 나아간 그 끝에는 무언가 거대한 기둥이 있었다. 이 미약한 빛으로는 그게 뭔지 알기도 힘들었지만 웬지 등골을 쭈욱 따라 달리는 그 스산한 기운과 무언가 소름끼치는 냄새는 이게 뭔가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해 주었다.
공포에 지배당한 채 간신히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지만 그 기둥의 끝에는 뭐가 있는지 도무지 보이지를 않는다. 가쁜 내 숨결을 따라 김이 하얗게 잠시 뭉쳤다가 공기중으로 흩어져 사라지기를 수십번.
결국 나는 마지막 남은 그 촛불을 꺼버리기로 했다.
- 후욱
곧이어 찾아오는 완전한 어둠.
잠시간의 시간을 들여 완전한 어둠에 눈이 조금씩 익어가자 비로소 나는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이리 내 몸 자체가 더 이상 나아가기를 거부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행맨.
교수형 당해 매달린 사람이 묶여있는 사행대의 기둥이 바로 내 앞에 있었고
금방이라도 스러질듯한 별빛이 그 사람의 형상을 등 뒤로 비추어 내고 있었다.
약간의 바람에 이리저리 조금씩 흔들리는 그 형상은 서서히 그 몸을 돌려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 아아아아아아악
- 윌리!!!!!!! 아아아아악!!!! 윌리이이!!!!!
또 다른 나였던 윌리. 나와 한몸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내 세상의 전부였던 윌리. 그런 그가 여기 기둥에 매인 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후 한동안은 기억이 희미하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 으아아아아아아!!! 윌리이이!!!
내가 내는게 아닌것만 같은 내 목소리의 절규를 들으며
- 크으윽.. 꺽..꺽...
미친듯이 주위에서 잡동사니들을 끌어모아 발판을 만들고
- 왜....!!! 누가 널....!!! 흐흐흑
간신히 윌리의 목을 매달고 있는 밧줄을 잘라 힘겹게 그를 내 팔에 안았다.
그리고 울며불며 반쯤 실성한듯이 겨우 겨우 얼굴을 가리고 있던 그 자루를 풀어 냈을 때,
내 생각과는 좀 다르게 윌리는 평온한 얼굴을 간직하고 있었다.
왜?
목이 졸려서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속에서도 어떻게..?
윌리..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거니...
그들이 조그마한 것을 꼬투리잡아 모든것을 너의 책임으로 돌릴때도 넌 그저 웃기만 했었지.
그들이 너를 매도하고 양심도 없는 도둑놈이라 욕하며 돌을 던질때에도 넌 그저 슬픈 얼굴로 미소지었었지..
그들이 기어이 너의 마지막 버팀목인 너의 연인을 길거리로 끌어내서 죽여버렸을 때에도 너는 분노하는 대신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고 홀로 장례를 치러 주었었지.
왜 그랬니 왜...
그토록 강하게 혼자서 버텼으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조금만 더 버티지..
왜 내가 이꼴을 보게 만들었니...
이미 차디차게 식어 사후 경직까지 풀리고 있는 그의 몸을 품에 안고 소리없이 오열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이제 기묘한 감각을 느낀다.
내가 윌리의 시체를 안고 있는 모습이 마치 다른사람이 보고 있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걸 뭐라고 하더라? 기억은 안나지만 어쨋든 학회에 보고된 사례는 알고 있다. 일종의 초지각력이라고 하던가?
그리고 나는 곧이어 윌리의 손에서 떨어진듯한 조그만 종이조각을 발견했는데... 역시나 깨알같은 글씨로 쓰여진 편지였다. 서둘러 편지를 펼쳐보았지만 이제는 또 너무 어두워서 이걸 읽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시간인지라 저 멀리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것도 느껴지고 있었고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순찰을 돌기 전에 윌리의 몸을 빼내야 한다.
약간의 여명이 느껴지는 새벽까지 미친듯이 윌리의 몸을 등에 업고 달리면서 간신히 위험지역에서 벗어 났다고 느꼈을 때, 이미 저쪽 하늘에서는 소란이 일기 시작한게 느껴진다. 조금 더 움직여야할까? 아니면 지금 이 근처에 은신처를 하나 만들어서 다시 밤까지 숨어 있어야 하나?
그러다 땀에 젖은 내 손에 다시 툭 걸리는 아까 윌리의 쪽지. 조심스레 펼쳐서 읽어보았다.
다행히 새벽의 여명은 그 작은 글씨를 읽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 너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먼저 떠나는 날 용서해다오. 내가 하지 않은 일들로, 그리고 몇가지 의 오해만으로 나는 내 모든것을 잃었고 난 이제 더 이상 힘이 없다. 하나만 약속해다오.
그들을 용서...
젠장 하필이면 그 뒤의 중요한 부분에서 내 땀과 눈물로 잉크가 번져버렸다.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무슨 뜻일까?
이것마저도 윌리는 나에게 항상 그랬듯 ' 니가 원하는 대로 하는거야 ' 라며 또다시 결정권을 남에게 넘기는 건가? 멍청한녀석...
그들을 용서하란 말일까...? 아니면 용서하지 말아달란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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